
권혁인(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목사)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 상가에 작은 빵집이 하나 있습니다. 평소 이 가게 주인은 지역 아동센터와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해 남은 빵을 꾸준히 기부해 왔다고 합니다.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기보다, 매일 새벽 밀가루를 반죽하고 불을 지피며 묵묵히 행해온 선의였습니다. 동네 주민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신뢰의 뼈대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지병이 있던 주인이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병원에 긴급 입원하게 되면서 빵집의 불이 꺼졌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영업을 중단한다는 다급한 안내문이 덩그러니 붙었습니다.
그때 단골손님들과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맘카페와 단톡방을 통해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은 순번을 짜서 직접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빵을 만들 제빵 기술은 없었기에, 매장에 남아있던 유통기한이 넉넉한 쿠키와 과자, 음료 등을 한데 모아 진열했습니다. 그리고 계산대 옆에 계좌번호를 적은 메모를 붙여 임시 무인 매장으로 운영했습니다.
손님들은 저마다 지갑을 열어 과자 한 봉지를 사고 몇 배의 돈을 송금했습니다. 주인이 평소에 심어둔 신뢰의 씨앗이, 그가 가장 무력해진 순간에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이 일화는 한 인간이 평소에 쌓아 올린 신뢰의 무게가 위기의 순간에 얼마큼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텅 빈 빵집의 진열대를 마치 내 일처럼 채우던 주민들의 손길을 생각하다가, 문득 한인 이민교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점차 교회는 고령화되고 신규 이민 유입마저 줄어들면서, 주일마다 찬송이 울려 퍼지던 예배당의 문이 하나 둘 닫히고 있다는 쓸쓸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마치 새벽을 깨우던 동네 빵집의 불이 꺼진 것만 같은 서글픈 풍경입니다. 물론 시대의 거대한 흐름과 세월의 무게는 개인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이치와도 같아서, 이 물리적인 한계 앞에 깊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원의 그 작은 빵집이 보여준 반전 속에서, 우리는 닫힌 문을 다시 열어줄 새로운 소망의 단초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소망은 교회의 본질이 수량적 크기나 제도의 공고함에 있지 않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평소에 이웃의 아픔과 함께 울고, 주린 영혼을 정성껏 대접하며 감동을 준 교회였다면, 비록 지금 성도가 줄고 외형적인 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이 남긴 영적인 유산만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골목길에 은은히 퍼지는 빵 냄새처럼 주변에 깊이 배어, 언젠가 교회가 가장 무력해지는 순간에 힘을 발휘하기 마련입니다.
교회가 보여 준 신뢰의 무게만큼, 그 문이 그대로 닫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이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단의 성도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교회 문턱을 넘어본 적 없는 이웃이어도 좋습니다. 빵집의 문을 대신 열었던 단골들처럼, 그들이 예배당의 닫힌 문을 밀고 들어와 그 자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매일의 정직한 삶으로 신뢰를 굽고 감동을 나눈다면, 세상은 그 불을 완전히 꺼트리지 않게 되리라 믿습니다. 외롭고 고단한 이민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창원의 작은 빵집이 전하는 이 소박한 기적이 따뜻한 위로와 소망의 증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