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열 (원로목사)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땅의 순례를 마치신 양재성 목사님을 애도하며, 동시에 그분의 귀한 삶을 기억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61년 입학을 같이 했지만 연세가 위이시기에 ‘양형’ 이라고 불렀습니다.
양형, 당신은 단순한 설교자가 아니셨습니다. 양형은 시대를 깊이 성찰한 철학자였고,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던 정의로운 목회자였으며, 끝까지 복음의 길을 걸어간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셨습니다.
양형의 설교말씀 속에는 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세상의 유행과 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약한 자의 편에 서서 정의와 사랑을 외치셨습니다.
때로는 외로운 길이었고, 때로는 오해와 비난도 있었지만, 목사님은 끝내 복음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딤후 4:7-8).
돌이켜보면, 양형은 삶은 바로 이 말씀의 증거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생각하는 신앙인이었고, 행동하는 목회자였으며, 사랑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셨고, 시대를 아파하셨으며,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고자 애쓰셨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에 한 모습은, 1963년 한일비준회담에 대한 부당함에 반대하는 전국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일 때에 우리학교 데모대 뒷켠이 소란스러워 돌아보니 어떤 학생이 다른 대학생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었지요. 알고 보니 ‘데모가 만능이 아니다’ 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에 흥분한 타 대학 데모대들이 집단 폭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겨우 모면을 했지만 피를 많이 흘려 근처 파출소에 가서 치료를 받고, 그날 전국적으로 모든 대학이 학기말 시험도 못 치루고 조기방학에 들어가고 말았던 기억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만용같이 느껴졌지만 그 후에 정의로움이 각인되었었지요.
이제 목사님은 눈물과 수고가 없는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헤어짐의 슬픔 속에 있지만, 부활의 소망 안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양재성 목사님, 목사님께서 남기신 정의와 사랑의 발자취는 오래도록 우리 가운데 살아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의 깊은 사유와 예언자의 용기, 그리고 목자의 따뜻한 마음을 지니셨던 목사님을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소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의 이 음성이 목사님께 가장 아름다운 위로가 되실 것입니다.
Requiem aeternam(Rest in Peace)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

고 양재성 목사
* 고 양재성 목사님 장례예배는 지난 7월 15일 오전 10시 오렌지카운티 가든 그로브에 있는 서니사이드 화장 장의사에서 홍신일 목사(월드비전 감리교회)의 집례로 열렸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