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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7/26/26
[조정래 목사의 세상 사는 이야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조정래(밀워키 베이뷰 UMC목사)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언젠가 자기 새끼 곰을 죽이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덩치 큰 남자 곰을 덩치가 작은 엄마 곰이 새끼를 보호하려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결국 큰 곰을 쫓아내고 새끼를 지키는 영상을 보고 모성애의 숭고함에 숙연한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나는 오늘 오후 아동병원의 응급실에서 한 어린 아이가 인공호흡과 심장충격 마사지를 받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옆에 서 있던 사회복지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사회복지사는 나에게, “PNB”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Pulseless, Not Breathing” (맥박이 없고, 호흡도 없는 상태), 즉, 심정지 상태라고 했다.

 

의사의 지휘하에 건장한 흑인 여자 인명 구조대원이 아이의 가슴에 손바닥을 세게 눌러서 심장에 충격을 가해, 심장이 다시 뛰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 심장을 눌러 충격을 가해도,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고, 의사는 결국 “아이가 사망했다”는 선고를 내렸다.

 

한 살도 안되어 죽은 아이는 응급실에서 다른 병실로 옮겨졌고, 간호사가 아이를 담요에 반듯하게 눕혀 놓았고, 아이의 부모님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죽은 아이 옆에 앉아 있었다.

 

그 병실에는 죽은 아이 외에, 아이의 심장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누르던 흑인 여자 구조대원과 나만 있어서, 내가 “아까 아이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고 노력하느라 수고 많았어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희미한 미소로 답변을 대신했다. 심정지 환자가 심장충격요법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15%미만이라고 배웠다.

 

그 구조대원은 “응급구조대원으로 일을 하며, 대학에서 의예과 공부를 하고 있으며, 언니 두 사람은 의사이고, 다른 언니는 심리학자고 다른 언니는 전문간호사인 의료계 집안이라”고 했다. 내가 “형제가 그렇게 많아요?”하고 물었더니, “24명”이라고 해서 놀라서, “한 부모님 밑에서 24명이 태어 났어요?”하고 묻자, “한 부모님은 아니고, 부모님이 이혼하고 재혼하며 맺어진 복합가정 (blended family)”이라고 했다.

 

형제자매가 24명이란 말을 듣자 나는 감리교의 창시자 John Wesley의 어머니인 Susanna Wesley는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던 Samuel Annesley와 그의 아내 Mary White의 25번째 막내딸로 태어난 것이 생각났다.

 

Susanna의 부모님이 아이를 24명만 놓고, 25번째 아이인 Susanna를 낳지 않았더라면, Susanna의 15번째 아들인 John Wesley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John Wesley가 없었더라면, 감리교회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감리교회가 없었더라면 나는 목원대학과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공부할 기회나 미국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할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엉엉 우는 소리와 함께 젊은 흑인부부가 병실에 들어 왔다. 아이의 아버지는 영어를 했으나, 아이의 어머니는 콩고식 불어 밖에 못해, 간호사들은 테블릿을 통해 불어 통역자의 통역 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아이의 엄마는 죽은 딸을 잃은 충격으로, 길길이 날뛰며 콩고식 불어로 울부짖었다. 내가 대충 짐작하기로는, “애야 깨어나라. 제발 좀 깨어나라. 기적이 일어나라. 하나님, 좀 살려주세요”하며 가슴을 손으로 문지르며, 심장이 다시 뛰기를 바랬지만, 죽은 아이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내가 아이의 아빠에게, “교회에 나가시는지요? 담임 목사님에게 알려 드릴까요?”하고 물었더니, 아이의 아빠는, “우리는 무슬림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머쓱해 져서, “알라 (하나님이라는 뜻의 아랍어)께서 아이를 주셨다가, 알라께서 아이를 데려 가신 것 같습니다. 아이는 고통이 없는 낙원에서 편히 쉬고 있으니, 슬퍼지만, 알라의 뜻으로 받아 들이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해 주었다.

 

죽은 아이의 얼굴을 비비며 애처럽게 울고 있는 아이 엄마를 보니, 중학교 일학년이던 내 동생이 물에 빠져 죽었을 때, 우리 어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방에 들어 누워 서럽게 울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동생이 죽은 것 보다, 어머니가 곡을 하며 우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얼마전에 유튜브에서 슬픈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린 사자가 하이에나에게  뒷다리를 물려 하반신 마비가 되어 앞발로만 간신히 걸어서 엄마가 있는 사자 무리에게로 기어 가자, 사자 무리들은 불구자가 된 사자새끼를 도와 줄 수 없었다.

 

먹이를 찾아 이동해야 하는 사자무리를 쫓아 가지 못하는 반신불구인 어린 사자에게 엄마 사자가 마지막으로 다가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구나”하는 식의 작별인사를 하고, 어린 사자를 버려 두고, 무리와 함께 떠나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찡했다. 어미 사자가 불구가 된 어린 사자를 버리고, 조용히 떠나 가는 것이 무정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짐승들이 인간들 보다 더 자연의 질서와 순리에 순응해서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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