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818.624.2190
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04/26
인생의 황혼에도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김원기(연합감리교 은퇴목사)

 

애틀란타로 이사 온지 3년이 되어 가는 어느 날 그동안 소식이 끊겼던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유흥렬 장로님이었다. 장로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가끔 식사도 하며, 산책도 하고, 그리고 같은 LA Fitness 체육관을 다니면서 운동도 하면서 가깝게 지나던 사이였다.



소식의 내용인 즉 일년 전에 아내 유영자 권사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 알려드리지 못하여 죄송하다며 유권사님이 자기 안방에 펼쳐 놓고 즐겨 보던 우리집 사람이 그린  산수화 그림을 가져가서 유용하게 썼으면 좋겠다는 것 이었다.



벌써 수십년 전의 일이다. 미국 연합감리교회 선교감리사로 재직시에 미국연합감리교회를 부흥시키는 영적운동에 한인교회가 일조하기 위하여 로스앤젤레스 교외 필란(Phelan)에 영성 수양관을 건립할 10 에이커의 넓은 부지와 선교사 숙소나 선교관으로 사용할 수 있는 5 베드룸 저택을 구입하였다.

 

그때 모금 운동의 일환으로 내 아내는 2007년 8월 24일-8 월 30일까지 ‘임천 김숙희 수묵화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그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들 중에 한 점을 유영자 권사님이 거금을 주고 구입한 산수화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첩첩 산으로 둘러 싸인  계곡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변 가에 봄 꽃들이 만발하고 강변가 외딴집에 사는 강태공이 적은 배를 띄워 놓고 낚시를 하는 그림을 보면서 유영자 권사님을 아마도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 것이라고 짐작이 간다.



나는 황급히 캘리포니아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그 곳에서 가까이 지내던 선후배들도 만나고 아직도 ‘선한사마리아인한인선교회’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선교사역의 동역자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서 밤 잠을 설쳤다. 제 3의 이민지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서 아직 마음을 주고받을 친구들이 없는 나의 황혼기의 외로움을 나는 제 2의 이민지인 캘리포니아를 고향삼아 향수를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여동생과 함께 유 장로님이 살고 있는 해변가 동네의 한 한국식당에서 장로님을 만났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장로님은 지나온 이민생활의 긴 애환이 담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갓 미국으로 이민 와서 정착한 필라델피아에서 그로서리 마켓을 경영하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며, 플로리다의 작은 해변마을 사라토가에서 모텔사업을 하면서 교회를 짓고 섬기던 이야기, 사랑하는 한 아들을 잃고 난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던 이야기 등등 전형적인 이민 일세대들의 고생스러웠던 이민 일대기였다.

 

유영자 권사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남편에게 부탁하였다고 한다.  “여보, 제가 죽거든 제 화장실 싱크 바닥 카펫 밑에 봉투가 있으니 교회에 선교헌금 해 주세요.” 선교헌금이라고 적힌 하얀 봉투 다섯장에는 각각 일 만 불 씩 들어 있었다. 5만불 이였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소 의심 섞인 어조로 “5천블이 아니고 5만불이었습니까”라고 물었다.



유 권사님은 살아 생전에 절약하면서 살아가시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는 넉넉하고 넓은 마음을 가진 신앙의 여인이였다. 남편이 부부가 운영하는 모텔을 담보로 하고 교회건축을 위하여 20만불을 융자하자고 제의했을 때도 선뜻 동의하고 나선  보기드문 ‘내조의 여왕’이었다.



한번은 바디메오선교단 선교사의 간증을 듣고 은혜를 받아 당신의 금반지를 빼어 헌금하기도 하였다. 플로리다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 올 때였다. 이사짐 회사를 불러서 견적을 내어 보니 2만5천불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1천500달러를 주고 유홀(U Haul) 트럭을 빌려서 이사하기로 했다. 떠나는 날 트럭을 타고 교회를 한 바퀴 돌고 이사비용으로 나갈 뻔한 3만불을 교회에 헌금하였는데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것도 바로 유영자 권사님이었다.



일본 히로시마 근교에서 태어나 원자폭탄이 터질 때 권사님의 나이는 4~5세였다고 한다. 생명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겠다는 모진 마음을 품고 살아오신 것 이다.  



우리는 종종 오지의 선교현장에 가서 선교활동을 해야 선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선교헌금에 동참하는 것 만으로도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는 뜻있는 일이다.



어느 날 유권사님이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에게 매달 용돈 얼마씩 줘요” “어디에 쓸려고 그래요?” “나도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5장의 하얀 봉투가 채워지기 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모른다.



그 봉투에 들어가기 전에 그 돈을 다른데 쓰고 싶은 수 많은 유혹이 왜 없었을까? 사람의 마음이 조석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가냘프게 보이던 권사님의 마음에 그런 강인함도 있었구나라고 생각 하며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장로님은 너무 많은 액수라 그 중에 몇천 불을 급한 용도로 썼다가 마침 아프리카 선교사역자들이 자기 교회를 방문하고 선교보고를 할 때에 회계하는 마음으로 사용했던 몇 천불을 채워서 헌금하였다고 말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인가?

 

나의 아내는 그 때 그 당시 전시회에 출품했다가 남은 작품들을 모아서 얼만전에 우리가 다니는 잔스크릭 UMC 와 잔스 크릭 KUMC 연합으로 예배 보는 2026년 4월 28일에 미니 작품전시회를 개최했다. 적은 액수이지만 북부 아틀란타 지역에 새로운 한인연합감리교회 개척을 위한 최초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 . . .


생명의 씨앗은 언젠가는 싹이 나고 자라기 마련이다. 열매를 따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군가는 씨앗을 뿌려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황혼기에도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지 않을까?

List   
크리스천 위클리
후원교회/기관
The Christian Weekly
9925 Bothwell Rd.
Northridge, CA 91324
TEL. 818.624.2190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2023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