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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07/26
피조 세계의 신음
권혁인(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목사)

 

네팔에서 들려온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고 산이 무너지면서 마을이 흙탕물에 잠겼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평생 일구어 온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습니다. 정말 이것을 단지 ‘자연재해’라고만 불러도 되는 것일까.

 

폭염과 산불, 가뭄과 홍수가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때 ‘이상기후’라고 불렀던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일상이 되어 갑니다. 우리는 안타까워하면서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네팔은 멀리 있고, 그곳의 재난은 나의 삶과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른 시선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물과 땅을 만드시고, 그곳에 온갖 생명을 살게 하신 후 인간을 그 세계로 초대하셨습니다. 인간은 창조 세계의 주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고 하신 세상을 돌보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소유권이 아니라 돌봄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주인처럼 살아왔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발전이라 믿었습니다. 숲과 강과 바다도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자원으로 여겼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기후위기는 자연이 인간에게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인간이 오랫동안 자연에게 행해 온 일의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더 마음 아픈 것은 그 결과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지구의 자원을 많이 사용하며 풍요를 누려온 사람들과 그 대가를 가장 먼저 치르는 사람들이 다릅니다. 기후변화에 거의 책임이 없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홍수와 가뭄, 산사태로 가장 먼저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환경의 문제인 동시에 정의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롬 8:22)고 말합니다. 요즘 이 말씀이 새롭게 들립니다. 산불로 타버린 숲에서, 메말라 갈라진 땅에서, 그리고 홍수로 무너진 네팔의 마을에서 피조 세계의 탄식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 탄식 앞에서 신앙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얼마나 가져야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조금 덜 소비하고 조금 불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있는가.

 

기후위기는 결국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묻는 신앙의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창조 세계로 바라볼 것인지 말입니다. 네팔에서 들려오는 피조 세계의 신음 앞에서 그 질문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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