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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0/02/26
50년 이어진 인연
유분자(장로,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간호사로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늘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병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따뜻한 격려 한마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마음,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작은 실천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결국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오랜 세월 현장에서 보아왔다.


지난 7월 21일 소망 소사이어티 소망 홀에서 열린 웰에이징(Well-Aging) 교육 세미나는 그런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뜻깊은 자리였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35명의 시니어들이 참석했다. 소망 소사이어티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지만 첫 회부터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날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안겨 준 것은 세미나가 끝난 뒤였다. 처음 보는 세 분이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셨다.


“회장님은 저희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희는 늘 회장님을 기억하며 살아 왔습니다.”


순간 무슨 말씀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분들은 모두 은퇴한 RN 간호사들이었다. 50여 년 전, 한국에서 갓 미국으로 이민 와 RN 면허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남가주 한인간호협회가 운영하던 RN 시험 대비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후배들이었다.


당시 미국 RN 시험은 워낙 어렵기로 유명해 한인사회에서는 ‘RN 고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될 정도였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 할 수 없었고, 가족의 생계와 미래도 불 투명했다.


그만큼 절박한 시간이었기에 선배 간호사들은 병원 근무를 마치면 곧장 강의실로 달려왔다. 피곤함을 뒤로한 채 후배들의 합격을 위해 밤늦도록 함께 문제를 풀고 경험을 나누며 함께 공부했다. 누구도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후배들이 미국 사회에 당당히 뿌리내리는 것이 곧 우리의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회장님 덕분에 시험에 합격했고,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했습니다”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오래전의 일이어서 그분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더 큰 감동은 그 다음이었다. 그분들은 감사의 말만 전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소망 소사이어티의 평생회원으로 가입해 우리의 가족이 되어 주셨고, 내가 없는 사이 직접 소망을 찾아와 시신기증 서약까지 마치셨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밀려왔다. 50년 전 아무런 계산 없이 심었던 작은 밀알 하나가 반세기의 시간을 지나 아름다운 열매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사람에게 베푼 진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선한 마음은 시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선한 마음을 낳고, 그 마음은 다시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단순히 오래 사는 시대를 넘어 어떻게 건강하고 품위 있게 나이 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병을 예방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집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웰에이징의 핵심 가치이다.


소망 소사이어티는 교육에만 머물지 않는다. 웰에이징 프로젝트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한인 시니어들을 돕는 케어 코치를 양성하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이제 남가주를 넘어 뉴욕·뉴저지와 워싱턴 D.C.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뉴욕에서 교육을 받은 다섯 명의 케어 코치가 모두 현직RN과 NP라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건강할 때 준비하고, 서로를 돌보며, 감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작은 마음 일지도 모른다. 50년 전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건넸던 작은 도움처럼 말이다.


그 작은 밀알 하나가 반세기를 지나 다시 아름다운 열매가 되어 돌아온 것처럼, 오늘 우리가 심는 작은 사랑과 나눔 역시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꽃피우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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