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 뉴욕은 500명 이상, 샌프란시스코는 250명 이상 모임을 금지한다더니 이제 휴스톤은 10명이다. 자유와 평등이 대명사인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집회결사의 자유가 없어지는 듯한 시간이 코로나의 극성으로 성큼 가능해졌다.
심지어 주일 날 공중예배가 없음이 일반화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하노이 힐튼(Hanoi Hilton)의 교훈을 깊이 묵상할 때라는 느낌이다.
하노이 힐튼은 월맹 북폭 중 추락해서 포로된 미군 F-4 팬톰기 조종사들을 수용한 하노이 근처 포로수용소였다. 그들은 한 평도 되지 않는 양철 통속에 갇혀있어야 했다. 습하고 뜨거운 사계절을 그들은 조금의 자유도 없이 살아갔다.
식사 시간은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시간. 그러나 자유로운 대화를 금지했기에 이 때가 되면 그들은 서로를 스치며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 암송한 성경구절을 비밀리 서로 나누면서 그 감옥에서 서서히 죽어가기도 하고, 산 자들은 1975년 휴전회담 후에 마침내 풀려 나온다.
나의 42년 주님 안에서의 나그네 생활에 한 번도 북한 성도나 사우디 지하 교인처럼 찬송을 억압당해 본 적도 예배를 조종당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가끔 일상의 삶이 답답함이 몰려오면 하노이 힐튼을 묵상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노이 힐튼에 대한 묵상은 저로 하여금 그 답답한 시간이 바로 하나님을 뵙는 기회가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세상이 많이 수상하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사회적 거리라던가 공중예배를 못하게 해도 결코 나의 골방인 하노이 힐튼에서 올려지는 예배를 묶어 놓을 수 없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더 묵상한다.
나의 골방 하노이 힐튼에서 원치 않는 일이나 사건이 필자의 삶 속에 슬며시 스며들면 로마서 12장 2절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를 발동한다. 그리고 현재 나를 짓누르는 그 불편함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새롭게 한다.
“나에게 몰려오는 무슨 불편함은 단지 하나님의 축복일 뿐이다 (Any kinds of inconveniences are nothing but His blessings)”
(최호진/ 현 한동대학교 객원교수/ 『영혼의 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