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818.624.2190
인터뷰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5/25/22
개척한 ‘찬양교회’서 36년 목회 후 은퇴하는 김성대 목사
“지난 36년은 제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였습니다”
교회창립 30주년과 70세 생일을 맞아 축하 케익을 자르는 김성대 목사와 김금순 사모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36년을 시무하고 은퇴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빈번한 이민교회 현실 속에서 한 교회를 36년 동안 섬기다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한결같은 끈기와 저력은 큰 대조를 이루어 우리를 큰 감동에 이르게 한다.

LA에 있는 ‘찬양교회’에서 은퇴하는 김성대 목사는 37년 6개월 동안의 미주목회가운데 36년을 찬양교회에서 목회했으니 인생을 다 바친 교회인 셈이다.

오는 6월 6일(주일) 은퇴를 앞두고 있는 김성대 목사를 집무실에서 만나보았다. [편집자]

 

 

은퇴를 축하드립니다. 은퇴를 앞두고 목회 중에 가장 보람있었던 어떤 순간들이 생각나시는지요?

 

-모든 목사님들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교회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되고 새사람이 되는 과정을 지켜볼 때가 가장 보람있고 행복한 순간들이었습니다. 36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하다 보니 내가 싫다고 반대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같이 신앙생활하던 성도들이 우리 교회를 나갈 때 가장 힘들고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며 나를 핍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겸손을 배우고 인내를 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내가 사랑했던 그런 성도님들을 통하여 저를 연단하시고 훈련시키셨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36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할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성대 목사 




목회하시는 동안 많은 청소년 문제아들을 품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새사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던 많은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네, 제가 목회하는 동안 보통 6~7명의 청소년을 집에 데리고 살만큼 내 주변엔 문제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마약하는 젊은이들이었어요. 집에 데려다 재워주고 밥 먹여주면서 사람되라고 기도해주곤 했어요. 많은 젊은이들이 변화되어서 새 인생을 살면서 우리교회 출석하는 경우도 많았고 반면에 하다하다 안돼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툭하면 함께 살던 아이들이 우리집에서 시계나 돈을 훔쳐 도망가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변화시켜 보라고 보낸 아이들이라 생각하고 문제아들을 많이 거느린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부흥회 강사로 많이 활동하셨는데요. 그동안 얼마나 부흥회를 인도하셨습니까?

 

-내가 부흥회 인도로 교회를 자주 비우다 보니 그걸 이유로 나를 쫓아내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이상은 안나간다 약속하고 부흥회를 다녔습니다. 이상하게도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부흥회 요청이 왔습니다. 저의 부흥회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 돼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돼라,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사람이 돼라고 외칩니다. 1년에 5-9회는 한국으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과테말라, 브라질, 대만, 독일, 중국, 일본, 아르헨티나, 몽고, 필리핀 등등 여러 나라를 다녔습니다. 특히 치유집회를 많이 했어요. 하나님께서 그런 치유은사를 제게 주셔서 환자들을 위해 특별히 많이 기도하고 치유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신학공부는 어디서 하셨습니까?

 

-한국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1981년 당시 대한신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미국에 들어와서 공부하고 계시던 누님, 김인경 목사님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라고 권면했어요. 그래서 한 학기를 마치고 대한신학교는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게 1982년입니다. 이미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네 식구가 돈 한푼 없이 무작정 상경하는 마음으로 미국 오클라호마에 떨어졌지요. 누님이 추천해 준 대학교가 오클라호마 베다니에 있는 서던 나자렌 유니버시티(SNU, Southern Nazarene University)였습니다. 1984년에 SNU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풀러신학교에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LA에 도착한 것이 1984년이었습니다.

 

 

그럼 언제 찬양교회를 개척하셨나요?

 

-난생처음 LA에 떨어졌는데 이미 누님 목사님이 지금의 찬양교회 예배당에서 ‘나성한인나사렛선교교회’란 이름으로 몇 가정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1985년 김인경 목사님이 일본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고 제가 1986년 나사렛 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1986년 6월 첫 주일에 7가정과 함께 찬양교회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금년 6월 첫주일 창립 36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김목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3남 2녀의 자녀들. LA살때 이들은 모두 아버지 교회를 섬겼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두루두루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면?

 

-저의 후임으로 이계선 목사님이 취임하십니다. 제 후임자에게 첫 번째 질문이 “성령세례 받았느냐?”였습니다. 이 목사님 같이 아주 신실하고 훌륭한 후임자가 오시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와 함께 끝까지 우리교회를 지켜주신 신실하신 찬양교회 성도님들에게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 그동안 우리 교회를 거쳐가신 목사님들이 여기저기 교회를 개척하셔서 아름답게 목회하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송인철 목사님, 채인석 목사님, 박순길 목사님이 우리 교회 부목으로 사역하시다 교회를 개척하셨고 프레즈노의 목영서 목사님도 그랬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 지교회는 아니지만 그 목사님들이 목회하시는 것을 보면 그래도 우리교회가 축복받은 교회란 생각을 하면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내 아내와 가족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모든 시련을 함께 극복하면서 내 등 뒤에서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아내와 자녀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영광스러운 은퇴가 가능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성대 목사 약력

 

충남 서산 출생

인천 제물포 고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서던 나자렌 유티버시티(Southern Nazarene University) 종교학과 졸업

미주한인나사렛성결교회 총연합회장 역임

미주 웨슬리언연합회 회장 역임

남가주교협 수석부회장 역임

아내 김금순 사모와 장남 샘, 둘째 데이빗, 셋째 다니엘, 그리고 지선과 정아 두 딸이 있다

 

 

 
List   
크리스천 위클리
후원교회/기관
The Christian Weekly
9925 Bothwell Rd.
Northridge, CA 91324
TEL. 818.624.2190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2020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