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기](3) 기독교의 요람…마가의 다락방, 그리고 시온산과 다윗의 묘
고대 예루살렘에서 가장 높았던 오늘날의 시온산
우리 순례단은 머물고 있는 단 제루살렘 호텔을 출발, 버스를 타고 제일 둘째날 일정으로 먼저 시온산(Mount Zion)으로 이동했다. 성경에는 150여회나 시온(Zion)이란 말이 등장한다. 그 시온산은 감람산에서 서남쪽으로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시온산(Mount Zion)
시온산은 예루살렘 남서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시온이란 말은 성경에 150여회나 등장한다. 제1차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한 후 바벨론 포로기에 시온이란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넓은 의미로 잃어버린 조국의 땅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137:1)”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시온은 예루살렘의 가나안 원주민이었던 여브스족이 머물던 “시온산성을 다윗이 빼앗았나니 이는 다윗의 성(City of David, 삼하 5:7, 왕상8:1)”이라 일컬어졌다.
시온, 예루살렘, 성전산(Temple Mount)이 각각 구별되기도 하였으나(미3:12), 넓은 의미로는 예루살렘 전체를 지칭하기도 했다(사2:3,33:14, 요엘3:5). 시온의 딸(사1:8, 30:16),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사10:24), 시온에 거하는 하나님(요4:17, 시20:3)과 같은 많은 파생어가 시온에서 나왔다.
마가의 다락방과 다윗의 가묘(King Davids Tomb)
마가의 다락방은 예루살렘 성의 시온문에서 바깥쪽으로 약 100미터 거리에 있는 2층 석조건물에 있다. 시나클룸(Cenaculum, 식당)이라고 불리는 이 마가의 다락방은 사실 교회가 탄생된 요람이요 오늘날 전 세계의 교회들이 시행하고 있는 성만찬이 탄생된 곳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전날 12제자와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눈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고(마가 14:12-25, 누가 22:7-13),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유다 대신 맛디아를 제자로 선출한 장소이기도 하다(사도행전 1:12-26). 더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한 장소로서 이때부터 제자들은 변화된 모습으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사도행전 2:1-3).
또 AD 48년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 곳이 이곳이며(행15:1-29), 옥중에서 빠져나온 베드로가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행12;1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곳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며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던 장소다(눅:24:33-43).
그러니까 기독교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된 곳으로서 그 교회의 기원을 이루는 역사적인 곳이다. 그러나 우리가 순례하는 오늘날의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 당시의 건물이 아니라 위치상으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신 곳으로 여겨 세워진 마가의 다락방 기념교회라고 할수 있다.
이 다락방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어 3개의 중심기둥과 주위 벽을 따라 세워진 기둥들이 곡선으로 연결되어 아치를 이루며 천정을 받치고 있다.
AD 70년 로마의 타이터스 황제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함몰당할 때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614년 페르시아 군대의 침략 때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그 후 중세에 이르러 십자군이 예수살렘을 점령한 뒤 1176년 다윗왕의 가묘가 건물 아래층에 만들어지고 현재의 모습으로 마가의 다락방도 재건되었다. 그 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관리해 오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받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로마 캐톨릭의 소유로 돌아왔다.
마가의 다락방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되었고 아래층 다윗의 무덤은 유대인들의 성지로서 통곡의 벽과 함께 순례의 핵심이 되고 있다. 다윗왕의 무덤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이 곳은 실제 다윗의 무덤이 아니라 10세기경 다윗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가묘, 기념묘라고 할수 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왕들의 무덤은 그 위치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다윗의 무덤은 특히 다윗성내에 있었으나 AD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마리아 영면교회(Church of the Dormition)
시온산은 고대 예루살렘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이 시온산 제일 높은 곳에 세워진 것이 바로 마리아 영면교회(Church of the Dormition). 성모 마리아가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숨진 곳이라 하여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당이다.
비잔틴 시대에 이 시온산에 처음 교회당이 세워졌는데 이는 비잔틴시대에 예루살렘에 세워진 최초의 3개 교회당 가운데 하나로 이름은 거룩한 시온교회(Church of Holy Zion)였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슨탄틴 대제에 의해 세워진 이 교회당은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교회로 여겨졌으나 AD 614년에 페르샤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바로 그 자리에 재건축되어 오늘에 이르는 현재의 교회당은 1910년 독일 베데딕트 수도회가 건축한 것이다.
네 개의 웅장한 타워로 둘러싸여 마치 요새를 연상시키는 이 마리아 영면교회는 예루살렘 성의 시온문(Zion Gate) 남쪽에 세워져 있다.
그럼 마리아는 현재의 터키 에베소에서 사도 요한이 어머니처럼 모시고 살았다는 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대부분은 마리아가 에베소에서 살다가 죽음이 가까워오자 예수님의 제자들의 본거지인 이곳 시온산에 돌아와 죽음을 맞이했고 그리고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사망 후엔 기드론 골짜기 무덤동굴에 묻혔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윗왕의 가묘. 남녀가 구분해서 입장해야 한다
시온산에서 바라본 감람산. 왼쪽이 예수살렘 성이다
마리아 영면교회. 에베소에서 이곳으로 와서 영면했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교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