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Reformation Day)로 지키는 날이다. 이날은 1517년 독일의 마틴 루터(1483-1546)가 당시 교권의 타락과 부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통과 관습으로 일관된 중세 교회를 향하여 신앙개혁을 외치며 95개 논제를 공포한 날이다. 올해는 종교개혁 제504주년을 맞는다. 루터는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출생하고 그리고 태어난 도시에서 사망했다. 종교개혁기념일을 앞두고 그가 걸어온 ‘루터의 길’을 사진으로 정리해 본다. [편집자]
유년시절을 보낸 코타의 집 1498년 아이제나흐(Eisenach)로 이사하여 쌍트 게오르겐(St. Georgen)교회에 속한 학교에 다니며 우어술라 코타(Ursula Cotta) 집에 살았다. 그 코타의 집은 현재 ‘루터하우스’가 되어 루터기념관이 되었다.
수도사가 되어 들어간 아우구스틴 수도원 1501년 5월에 에어푸르트(Erfurt) 대학에 입학, 법학공부 과정을 마친후 벼락으로 친구가 죽는 ‘낙뇌사건’을 접하고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에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규칙적인 수도생활 중 1507년 에어푸르트 성당에서 카톨릭 신부로 서품을 받고 신학 공부에 몰두하다.
철학과 신학을 강의한 비텐베르크대학 1508년에 에어푸르트와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시작하다. 신학학위를 받은 후 1509년엔 철학 외에 성경도 강의하다.
첫 로마여행 중 찾아간 스칼라 상타 1510년 11월에 수도원의 업무를 위해 로마를 여행하다. 카톨릭 교회의 제도와 실태에 깊은 실망을 느끼다. 비텐베르크로 돌아와 아우그스티누스를 연구하다. 유명한 스칼라 상타(성 계단 성당)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를 깨닫다. 성 계단 성당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오르신 28개 계단으로 성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와 성당 안에 보존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95개조 논제를 내건 궁성교회 정문 1517년 10월 31일에 95개조의논제(Thesen, 라틴어로 작성)를 비텐베르크 궁성교회 정문에 내 걸다.이 논제를 내건 목적은 관계자들과의 토론을 벌여보자는 것 이었으나의외의 반응이 일어났다. 2주 내에 전 독일에 파문이 일어났고 한달내에는 전 유럽에 이 사실이 알려졌다. 그후 교황청과의 관계가 악화되다.
교황 교서를 불태운 참나무 1520년 12월 10일에 ‘자기의 주장을 파기하고 로마로 출두하라’는 교황령에 정면으로 맞서 비텐베르크 참나무 아래서 교황교서를 공개리에 불태우다.
보름스 제국회의서 루터가 섰던 자리 1521년 1월 교황청의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취소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다. 그날로 파문된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그를 죽여도 살인이 아니라는 ‘사형선고’를 받다.
숨어서 신약성경을 번역한 바르트부르크 성 그후 아이제나흐 근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납치되어 군주의 보호아래 루터는 신약성경을 원문 그리스어에서 독일어로 번역을 시작하다.
수녀출신 폰 보라와 결혼하여 살던 비텐베르크 루터의 집 1525년 농민전쟁으로 추방된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여 비텐베르크에 살다(6명의 자녀 중에 2명은 어려서 죽음).
궁성교회에 안장된 루터의 무덤 1546년 2월 18일에 63세를 일기로 출생지 아이스레벤에서 사망하다. 그해 2월 22일에 비텐베르크 궁성교회에 안장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