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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1/13/21
조명환의 추억여행(16) 요르단의 협곡도시 페트라
페트라의 백미이자 요르단의 보물인 알카즈네. 보물이란 뜻의 이 신전은 인디아나 존스 3편에 등장함으로 더욱 유명해 졌다


요르단의 페트라(Petra)는 아랍계 유목민이던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산악, 혹은 협곡 도시였다. 페트라란 말은 그리스어로 ‘바위’란 뜻이다. 본래 나바테아인들은 이곳을 레켐(Rekem)이라고 불렀지만 로마가 이곳을 정복한 후 그리스인들이 붙여놨던 페트라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BC1400년경부터 이곳에 도시가 번성했고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의 교차점에 있어서 중개무역과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 등으로 번영을 누린 도시였다. 그래서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까지 갖춘 시대의 첨단을 달리던 도시였다.



 
페트라 입구에서 알카즈네 신전에 이르는 1.2 Km의 협곡길을 ‘시크’라고 부른다.
이 협곡을 걸어본 사람만이 그 신비로움을 알 수 있다.  

 


BC9년~AD40년 동안 나바테아 왕으로 재위했던 아레타스 4세는 갈릴리 분봉왕 헤로데 안티파스의 장인이었는데 헤로데 안티파스가 자신의 딸을 버리고 제수 헤로디아와 결혼하자 이에 분노해 갈릴리를 침공했다가 로마의 중재로 물러나기도 했다. 이 나바테아는 AD 6세기경에 지진으로 완전 폐허가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스위스 출신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가 카이로로 가는 도중 페트라에 관한 소문을 듣고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면서 여길 찾아 떠났다. 하지만 여기 살던 베두인들이 비무슬림 이방인을 별로 환영하지 않았기에 그는 이슬람교도로 위장하고 그들과 친해진 끝에 1812년 발견에 성공했고 드디어 유럽으로 돌아와 여행기를 쓰면서 이 도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원전에 세워진 도시라고 보기엔 너무 정교한 상수도 시설

 

폐허 속에서 다시 태어난 이 도시의 보존 상태가 엄청 좋아서 유럽인들을 감탄시켰지만 사실 외양은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지금 속을 들여다 보면 텅텅 비어있는 상태다.

보통 페트라 하면 대표적인 유적인 ‘알카즈네(보물이란 뜻)’만 있는 것 같지만 페트라는 이것 말고도 주변에 여러 유적을 통칭하는 도시 명칭이다. 알카즈네 다음으로 유명한 앗데이르(수도원이란 뜻)는 높이만 해도 대도시 빌딩 10층짜리만 한 곳이다. 야외 신전 등 바위 곳곳을 깎아 만든 다른 건물들이 800여 개가 넘는다.

 

 페트라의 원형극장. 나바테안들이 기원전 1세기경 바위산을 깎아서 3천명 규모로 만들었으나 그 후 로마인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으로 만들었다. 

 

 

바울이 다메섹 회심이후 페트라에 머물렀다?

 

기독교인들도 요르단 성지순례에서 빼놓지 않는 이 페트라는 우선 애굽을 탈출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를 통과하여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점 때문이고 아론이 죽은 호르산이 이 지역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역에 자리한 이곳 페트라는 회심한 바울의 첫 사역지로 기록된 아라비아가 바로 이곳이였다는 주장도 있다. 바울이 시리아의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찾아간 곳이 왜 하필 페트라일까?

 


협곡을 따라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낙타들도 있고 마차도 있다.  

 


지도를 꺼내 놓고 봐도 시리아에서 페트라는 너무 먼 거리다. 바울이 회심한 후 3년간의 기록이 성경에는 없다. 그럼 왜 복음의 요람인 예루살렘으로 향하지 않고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갔을까? 일부 성서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모세가 출애굽을 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그 아라비아 사막에서 바울도 이제 옛날의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란 새로운 ‘사도인생’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알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다메섹 사건으로 사울이 바울로 이름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후에도 사울로 불린 적이 있기는 하지만 사울이란 히브리 이름이 그리스식 이름인 바울로 바뀐 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페트라의 와디 무사(Wadi Musa) 마을 입구에 서 있는 3개의 하얀색 돔으로 이루어진 시멘트 건물. ‘모세의 우물’로 불리는 샘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따라 북상하다 이곳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며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전해지는 곳이다(민 20장 10∼11절).

 

 

알 카즈네(The Treasury)

 

페트라의 최고 유적으로 웅장한 26미터 높이의 건물이다. 25m 높이의 고린도식 기둥 6개가 정면을 받치고 서 있는 그리스식 건축 양식으로 기원전 1세기경 나바테안 왕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카즈네(Khazneh)란 베두인의 말로 ‘보물’이란 뜻. 건물 꼭대기에 항아리 모양의 단지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곳에 셀 수 없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1, 2층 정면에 걸쳐 나바테안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와디무사에 있는 모세의 우물

 

알카즈네가 더욱 유명해 진 것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지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편은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성배를 찾아가며 겪는 모험영화인데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이 영화가 촬영될 때 요르단 국왕은 직접 촬영장을 찾아 나서며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공을 들여서인가? 그 영화 덕분에 페트라는 일약 세계적인 관광코스로 변신한 것이다.

그래서 페트라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잊혀진 도시’, ‘붉은 바위의 왕국’, ‘요르단의 보물’ 등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 있는 곳이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알카즈네 앞에서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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