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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7/22/24
조명환의 추억여행(37) 베네치아와 산 마르코 성당

위 사진설명: 최초의 복음서 저자인 성 마가의 유해가 안치된 산 마르코 대성당.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이 성당은 세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10대 성당중 하나다.

 

 

이태리 말로는 베네치아지만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로 알려진 세계적인 수상도시이자 운하의 도시다.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옛날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고 중세와 르네상스 기간 동안엔 유럽의 해상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다. 또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면서 유럽의 중앙 정세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던 도시였다. 베네치아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비단, 향료, 밀을 거래하는 주요 창구였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아 나폴레옹 통치 시대도 있었지만 나폴레옹이 멸망하면서 오스트리아에 합병되기도 했다. 그 후 1866년에 이탈리아가 통일되며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수상도시 베네치아는 곤돌라가 유명하다. 베네치아의 교통수단인 이 보트는 사공이 탑승해 노를 저어준다

 

베네치아는 세계적인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꼽혀왔다. ‘물의 도시’, ‘아드리아 해의 여왕’, ‘가면의 도시’ 등 다양한 별명들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고향이기도 하다. 현재 다급한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올라가고 있어 도시가 물에 잠기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환경오염 등에 시달리는 것도 문제다.



베네치아엔 하루 최대 6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연간 2천 2백만에서 3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있다. 베네치아 영화제가 열리고 다양한 국제 컨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린다.

 

 산 마르코 대성당 내부엔 여러 개의 돔이 있는데 금빛으로 칼라풀하기로 유명한 창조의 돔

 


마가의 유해가 안치된 산 마르코 성당

 

비잔틴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산 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과 인접해 있다. 원래 두칼레 궁전에 소속된 성당이었으나, 1807년에 베네치아 대주교가 이곳으로 주교좌를 옮기며 바티칸 소유의 대성당으로 승격되었다.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돔으로 꾸며져 있으며, 성당을 덮고 있는 황금 모자이크를 만드는 데는 몇 세기나 걸렸다. 대성당의 아름다운 디자인, 황금 모자이크, 베네치아의 부와 명성으로 인해, 산마르코 대성당은 11세기에 ''''황금 교회''''라고도 불렸다. 당시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독창적인 방식으로 비잔틴 양식과 이슬람 양식을 섞어 건축함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성당이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성당들과는 다르게, 산 마르코 대성당에는 프레스코화가 많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는 프레스코 대신 유리를 이용하여 대성당을 장식함으로써, 베네치아의 유리 산업과 보수적인 경향을 지키기 위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광장의 시계탑



산 마르코(마가, St. Mark)는 누구인가?

 마가의 유해가 안치된 성당내 제대



마가는 최초의 복음서 저자이다. 4복음서 중 제일 먼저 기록된 복음서가 마가가 기록한 마가복음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부유한 레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래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지만 ‘마가’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초대교회에서 신실한 신앙인이어서 그의 집은 가정 기도회 장소가 되었다. 성경에 ‘마가의 다락방’이란 말이 직접 명시된 곳은 없지만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장소를 마가의 다락방으로 보고 있다. 마가의 다락방은 사실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다락방이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재력과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이자 운하의 도시다. 118개의 섬들이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마가는 외삼촌인 바나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마가는 베드로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베드로전서 5:13참조). 나중에 선교사로 부름 받고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마가였다. 그러나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마가는 선교에 따르는 어려움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다. 이러한 마가의 나약함은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잇는 탄식의 다리.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유명한 다리다




그러나 그 후 마가는 오랜 연단기간을 거쳐 마침내 변화되었다. 다시금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진"(디모데후서 2:1) 마가는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우고 이집트에서 헌신적으로 선교 활동에 전념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가 AD 828년, 이슬람이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 알렉산드리아에서 마가의 시신을 발견한 베네치아 상인들은 그 마가의 시신을 베네치아로 훔쳐왔다. 그리고 마가의 유해를 봉헌한 성당이 바로 지금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di San Marco)이 되었다. 복음서 저자 마가(마르코)의 이름으로 세워진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 바로 산 마르코 성당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당시 총독의 관저였던 두칼레 궁전.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칼레 궁전

 
베네치안 고딕양식의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두칼레 궁전은 1100여 년 간 베네치아 공화국 120명의 총독의 주거지였다. 9세기에 건축된 궁전은 베네치아의 행정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궁전의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과 이어지는 ''''탄식의 다리''''가 있는데 바람둥이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 카사노바도 이곳을 거쳐 투옥되었다가 죄수 중 유일하게 탈옥에 성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외관의 분홍색과 흰색 대리석이 격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두칼레 궁전 내부는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베네치아 화가들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가 그린 세계최대의 유화작품 ''''천국''''이 유명한데, 아름다운 유화 그림이 ''''대평의회의 방''''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산마르코 광장과 유명한 비둘기 떼. 광장은 3면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거대한 홀처럼 보이자 한때 이곳을 점령한 나폴레옹이 유럽의 가장 유명한 응접실이라고 찬사를 쏟아낸 곳이다

 

 

산 마르코 광장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응접실’이라고 극찬한 산 마르코 광장은 도시국가로 명성을 떨친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치, 종교의 중심이었다. ''''ㄷ''''자 모양의 건물로 삼면이 둘러싸인 광장이 마치 거대한 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광장의 중앙에는 우뚝 솟은 두 개의 기둥이 자리하고 있으며, 기둥의 상단에는 베네치아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사자상과 수호성인 ‘성 테오도르’의 동상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성당, 궁전, 종탑 등 발길 닿는 곳곳에 볼거리가 가득해 베네치아 여행의 시작점이 되어주는 곳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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