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스프링스에서 열린 미주한국문인협회 여름캠프 참가자들[사진=미주한국문인협회 홈페이지]
연합감리교 신상만 목사가 미주한국문인협회(회장 오연희)의 2024년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신인상 시상식은 지난 8월24~25일까지 팜스프링스 미라클 호텔에서 열린 미주문협 여름문학캠프에서 있었으며 이날 미주문학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오연희 회장으로부터 상패를 받고 있는 신상만 목사
다음은 신상만 목사의 3개의 신인상 수상작품 중 하나이다.
[신상만 목사] 아프가니스탄의 20년
아프가니스탄은 참으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아프가니스탄은 근대 이전부터 유라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그 지정학 적 위치로 인하여 문명사의 교차로(Roundabout)라고도 불린다. 일찍이 영국의 역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inby)는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를 지나는 길의 절반은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만나고 나머지 절반은 다시 아프간의 베그람에서 만났다고 말하였다.
토인비의 말처럼 문명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침입은 끊이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영토를 보존하고 오히려 침략한 강대국들이 쇠퇴하고 돌아간 강대국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가 침략을 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영국이 소련이 그리고 미국과 나토가 침입했지만 아직까지도 건재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 누구도 그리고 한 번도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그 땅에 미군으로 파병되어 나토(NATO)군의 깃발아래에 근무한 시간들은 아프고 슬프지만 동시에 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하루에 네 번씩 이슬람 사원의 시끄러운 확성기가 귀를 때린다. 확성기를 통해 뿜어 나오는 알수없는 중얼거림은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왔음을 상기시켜 주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자명종 소리같다. 매일 110도가넘는 여름, 한낮의 더위가 그늘을 찿게할 때 철책선 너머로 늙수그레한 남자가 낙타 떼를 몰고와서 부대 밖으로 흘려보내는 허드렛 물이나마 먹이려고 낙타들을 향해 막대기를 휘두른다.
물이 귀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부대밖으로 흘려보내는 허드렛물마저 낙타의 목을 축이는 귀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보다도 더 짙은 흙먼지가 모든 것을 덮을 때 아무일 도 없었 다는듯 먼지를 툭툭 털고 군인들은 근무지로 향해야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두들 지치고 피곤한 여름날 오후에 전투기 굉음에 놀란 새떼들이 후드득 날아갈 때 머리속을 헤매던 생각 한가지, 이런 날 두부를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찌개에 밥한그릇 먹으면 속이 시원할 텐데….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대지와 살벌한 추위가 두툼한 겨울 전투복을 뚫고 들어와 몸을 움츠리게 한다. 봄과 가을은 느끼지도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새벽 미명에 엄청난 전투기의 굉음소리에 잠을 깬다. 오늘은 새벽부터 작전이 있나보다. 간밤에 두번의 로켓공격이 있었고 황급히 벙커로 달려가 몸을 숨겨야만 했다. 한밤중에 두 번을 깨어 벙커로 피하다 보니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에 숨어들어 로켓으로 나토군을 공격하는 탈레반을 잡으려면 마을을 향해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마을 주민들이 다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벙커로 몸을 숨겼는데 이번에는 모기들이 공격한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탈레반의 공격이 끝나고 안전하다는 사이렌이 울릴 때 까지는 잠을 설치고 멍한 눈으로 병사들을 살핀다. 다친 사람은 없는지, 벙커로 미처 피하지 못한 사병은 없는지 흐릿한 시선으로 안전을 확인한후 이미 잠자기를 글렀으니 일찌감치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다. 서로 다른 군복, 확인할수 없는 계급, 어느나라에서 온지 알수없는 군인, 서로다른 생김새, 서로다른 언어… 나토군의 현실이다.
그래도 음식은 국적을 뛰어넘어 배고픈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나보다. 식당에서 만큼은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김치찌개만 있으면 아무런 불만이 없을텐데.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주의를 전하고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오긴 했는데 과연 한마음으로 싸울 수는 있는 것일까?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마음도 하나가 되면 더 좋으련만.
끊이지 않는 질문 한가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나라에 과연 민주주의를 정착 시킬수 있을까? 아프가니스탄 파병기간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이슬람 문화권인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주의를 심으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파괴해야만 한다. 이슬람 문화에서 민주주의는 절대로 받아들 일수는 없으니까. 여성들과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기는 어려우니까. 선거로 지도자를 뽑기는 불가능 하니까.아니 그것역시 서구의 시각으로 본 질문이다. 수천년간 그렇게 그들의 이슬람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나라를 과연 무력을 앞세워 이제부터는 민주주의를 하라고 강요하면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이 고유한 문화를 버리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 일수 있을까?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머리가 아프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그들의 문화를 파괴 하고서라도 민주주의를 심는것이 그나라에 좋은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면서 그대로 두는 것이 그 나라에 좋은 것인가? 나는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전환점에 있는것인가 아니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역사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는것인가?
토요일 아침, 50여명의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부대로 들어왔다. 대민봉사와 활동을 위해서 주말이면 아이들에게 부대로 들어오게 하여 학용품도 나누어주고 영어도 가르쳐주고 축구도 함께 한다. 그런데 여자 아이들은 한명도 없다. 모두 남자 아이들 뿐이다.여자 아이들은 집밖으로 내보내지도 않고 더우기 교육을 시키지도 않는것이다. 민주주의를 심으려면 어렸을때 부터 가르치는것이 중요한데 여자 아이들을 참여시킬 방법도 없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이슬람식 민주주의는 따로 있어야만 하는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를 심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파괴해도 좋은 권리를 서구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머리속에서 질문은 하는데 답은 없다. 사병들을 모아놓고 토론을 해보았다. 반으로 나뉜다. 한쪽은 이슬람 문화를 파괴해서라도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하면 민주주의를 강요해야만 한다고. 다른 한쪽은 비록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이 무시되더라도 수천년간 살아온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누구 정답을 아는 사람 있으면 부탁이니 말 좀 해주소.
2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미군이 돌아왔다. 이상한 방법으로 전쟁을 끝내고 돌아왔다. 20년간의 성과는 훗날 역사가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펀단할 것인가? 실패한 걸까? 아니면 성공한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절반의 성공일까?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다시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전쟁 이전의 삶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다시금 히잡을 써야 하고 여성들을 위한 학교교육은 중단되었다. 반복되는 역사의 현실속에서 아픈 것은 국민들 뿐이다. 소련군 10년, 나토군2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동안 다친 사상자와 파괴된 문화를 그대로 탈레반에게 넘겨주고 나토군도 철수했고 미군도 철수했다. 남은 것은 서로에게 확인된 상처와 아픈 기억 뿐이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몸과 마음에 흔적으로 간직한 군인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주민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모두가 아픔을 간직한 패자일 뿐이다. 상처받은 영혼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소재로 삼은 영화를 보며 분통을 삼키는 패자의 아픔으로 남아있다.